<캐논 인버스: 메이킹 러브>는 단순한 음악영화나 멜로 드라마가 아니다. 이탈리아의 리키 톤야찌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사랑, 정체성, 역사라는 깊은 주제를 고전음악의 구조와 감성에 빗대어 풀어낸다. 제목인 '캐논 인버스(역행 카논)'는 음악에서 두 개의 선율이 정반대 방향으로 흐르면서도 아름답게 조화를 이루는 작곡 기법을 뜻하는데, 이 음악적 개념은 영화 전체의 서사 구조를 상징적으로 압축한다.
영화는 1930년대와 2차 세계대전이라는 암울한 시기를 배경으로,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를 매개로 한 두 청년의 우정과 숨겨진 가족사, 그리고 비극적인 사랑을 교차편집과 회상 구조를 통해 풀어낸다. 처음은 프라하에서 열린 경매장에서 시작되며, 한 여성이 낯선 바이올린 연주를 듣고 과거의 잃어버린 기억을 떠올리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으로 흐른다.
1. 사운드
<캐논 인버스>에서 가장 돋보이는 요소는 단연 사운드와 음악의 사용이다. 이 영화는 말보다도 선율로 감정을 전달하고, 인물의 내면을 음악으로 말하게 한다. 영화 전체에 흐르는 주제곡은 마치 또 하나의 등장인물처럼, 시종일관 주요 장면마다 등장해 감정의 파동을 이끈다.
특히 주인공 야시크가 연주하는 ‘캐논 인버스’는 단순한 곡이 아니라,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혈통의 상징이며, 잃어버린 정체성과 사랑을 이어주는 ‘기억의 선율’이다. 그 선율은 똑같은 구절을 반복하면서도, 역행 구조 속에서 시간과 감정이 전혀 다른 의미로 변주된다. 초반에는 호기심과 순수한 우정의 표현이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애절한 사랑과 상실의 정서로 깊어지며 관객의 감정을 극도로 몰입시킨다.
또한, 영화의 음악은 배경음악(BGM) 그 이상으로 사용된다. 이는 영화 전체에서 대사가 줄어들고 음악이 주요 감정 전달 도구로 기능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바이올린 솔로가 조용한 공간에서 홀로 울려 퍼질 때, 그 음 하나하나는 마치 인물의 눈물과 탄식을 대신하는 듯하다. 관객은 대사 없이도 상황의 절박함과 슬픔을 자연스럽게 공감하게 된다.
2. 인물
주인공 야시크와 다비드는 상반된 배경을 지닌 두 인물이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란 다비드와 가난한 유대인 소년 야시크는 바이올린을 통해 우정을 나눈다. 그들의 관계는 표면적인 경쟁이나 동료애를 넘어서, 내면의 깊은 유대감과 운명적 연결로 이어진다. 영화는 이들이 연주하는 곡을 통해, 보이지 않는 피의 인연과 감정을 암시하며 이야기를 전개해 나간다.
바이올린이라는 악기는 이 영화에서 단순한 도구가 아닌, 정체성의 매개체이자, 역사의 기억을 담는 그릇이다. 야시크가 가진 바이올린은 단지 연주를 위한 물건이 아니라, 세대를 이어온 기억과 유산을 상징한다. 이 악기가 누구의 것이고, 누구의 연주로 울려 퍼지는가는 곧 인물들의 운명을 결정짓는 핵심 단서가 된다.
3. 주제
이 영화는 ‘사랑’이라는 테마를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낸다. 우정, 가족애, 그리고 연인의 사랑은 모두 클래식 음악이라는 감정의 언어를 통해 더욱 깊이 있게 전해진다. 특히 다비드와 한 여성과의 사랑은 단지 한 시대를 살아간 연인의 이야기라기보다는, 예술과 감정, 그리고 인간 존재에 대한 숭고한 접근이라 볼 수 있다.
음악은 사랑의 도구이자 증표이며, 그들이 사랑을 나눈 장면마다 음악은 단절되지 않고 흐른다. 영화는 직접적으로 사랑을 묘사하지 않아도, 그 감정이 오케스트라의 웅장함이나 바이올린의 절규를 통해 생생하게 전달되도록 유도한다. 감정의 폭이 커지는 클라이맥스에서는 말 한마디 없이 바이올린 하나만으로도 모든 진심이 전달되는 경지에 이른다.
4. 메시지
전쟁이라는 시대적 배경은 영화의 서사를 더욱 절절하게 만든다. 나치의 박해, 유대인에 대한 차별, 그리고 음악조차 검열과 억압을 받는 그 시대에, <캐논 인버스>는 ‘소리’로 맞서 싸운다. 영화에서 사운드는 두 가지 층위를 가진다. 하나는 감정을 대변하는 아름다운 음악이고, 다른 하나는 억압과 폭력을 상징하는 냉혹한 현실의 소음이다.
총성이 울리는 장면과 동시에 삽입된 바이올린 연주는, 전쟁이 파괴한 인간성과 음악이 수호하려는 감정의 대립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아름다운 음악 위로 끼어드는 갑작스런 고함과 기차의 경적, 거리의 발소리 등은 당시의 공포를 실감나게 전하며, 그 속에서도 꺼지지 않는 예술의 불씨를 그린다.
5. 마무리
<캐논 인버스: 메이킹 러브>는 이야기의 전개, 영상미, 연기력 모두 뛰어나지만, 그중에서도 음악과 사운드의 활용이 이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는다. 바이올린 선율은 단순한 배경이 아니라, 주인공들의 감정, 기억, 사랑, 역사까지도 통째로 품은 서사의 본질이다. 그리고 그 음악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결국 현재의 한 청자에게 감정을 되살려내는 힘을 지닌다.
이 영화는 기억을 잃은 시대에서 잊지 않아야 할 감정과 이야기를 음악으로 되살린다. 클래식 선율에 녹아든 진심은 관객에게 직접 말을 걸고, 마지막 장면에서 연주되는 '역행 카논'은 다시 한 번, 사랑이란 무엇이며 기억이란 무엇인지를 묻는다. 그리고 우리는 그 선율 속에서, 잃어버렸던 감정을 다시 찾아내게 된다.